유리 항아리 - 김인희
맑은 겨울
창가의 거실 탁자 위에 놓인 테라리움 한 점
유리 항아리 속에 담긴 산과 바다와 강줄기…
태양과 별, 꽃나무, 벌, 나비, 나
유리 항아리의 세계
맑은 유리, 경계가 없어 보이지만
두 손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는 저 유리 항아리
흐르지 않는 시간을 담고 있는 실재
항아리에 담긴 모든 사실들
현상의 세계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우주 전체를 담아도 넘치지 않는 저 항아리는
현상의 흔적 혹은 기억
다 풀린 실 다시 감긴
프로이드의 기억 속의 실패*
재현의 언어
새로운 시간의 이야기 항아리 속에 있네
빛의 시간들
항아리 안 정지된 시간 속 겨울 강물로 돌아와
돌아와 온몸 씻고
얼음장 밑에서
봄 강으로 흐를 준비를 했네
흐르는 시간들
차디찬 기억의 항아리 속을 흘러 투명해진 모습
없는 듯 있는 경계 밖으로 흘러나오네
* 실을 감아두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