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퇴근 길 - 박해영
잎을 다 떨군 나무가 블록 담 위로 삐죽이 나와 있고 가을 햇살은 가지 끝에서
시들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참새 몇은 가지 위에서 저무는 하늘에 넋을 잃고 또 몇 마리는 담 밑으로 내려
와 작은 주둥이로 땅 위를 쉴새없이 쪼고 있었습니다
한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참새는 생각의 끈을 주워들 사이도 없이 혼비백산 줄행
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참새가 그 자리에 다시 날아와 하던 일을 계속할는지 소리난 곳을
둘러보며 분노에 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십오 분을 더 걸어야 정거장에 도착하는 나는 놀란 가슴을 쓰다듬으며
진득히 달라붙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강냉이 튀기는 기계를 돌리던 노인이나 주위에 모여 작은 옥수수알이 먹음직한
강냉이로 변모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이 작은 참새 몇 마리 쯤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그리 큰 잘못은 아닐 텐데, 그러나 막상 놀라 날아가버린 참새가
느닷없이 당한 변은 참으로 억울하다는 둥, 그리고 이건 결론이 참 아리송하다는
생각.......
땀기가 배어나와 등판이 가렵고 내가 탈 버스가 왔을 땐 움츠러진 어깨 위로
가을 햇살이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