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 윤종대
길짐승 날짐승
풀 뜯는 재미 꽃 따는 재미 열매 깨는 재미 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풀로 손발톱을 만들고 이빨을 만들고
꽃으로 붉은 피를 만들고 열매로 알을 만들고
다시금 자르고 부수는 재미로 웃는다
그래도 복사꽃은 저리 웃고
그래도 복숭아는 저리 탐스럽고
할퀴고 꼬집고 뜯는 것이
무너뜨려 부수는 것이
새살 가득 돋는 기쁨을 주기 위한 거라고
바다에서 호수에서 계곡에서 바위 위에서
바람 분다. 바람 피운다
길짐승 날짐승들 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