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구성 - 채선
함정 같은 합정역, 다시 지상으로 올려지면
매일 도굴당하는 듯한 도시의 유적
이목구비 사라진 생의 부장품들 뿔뿔이 흩어지고
종점과 종점을 도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습관처럼 빵을 뜯는다.
아무도 동승하지 않은 엘리베이터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가 보이는 사람이었다가
이목구비를 놓친 거울 속에서
여러 겹의 내가 하나인 나를 에워싸고 있다.
서랍처럼 깜깜한 방, 불을 켜자
허겁지겁 닫아두었던 아침이 달려든다.
뒤집혀진 채 널브러진 속옷
길쭉하게 벌어진 입으로 니체를 흘리고 있는 책상
혼자 울다 목이 다 쉰 뻐꾸기시계
우편함 속 수신대기 중인 존재들에게
늦은 밤, 나는 인사를 한다.
굿모닝?
그때 길게 끌리는 초인종 소리,
이목구비를 잃어버린 채 두 발만 보이는
한 겹의 또 다른 내가 문 밖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