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 김영래
―사순절 10
무희여, 지난 사육제 때
내가 너의 입맞춤으로 깨워 춤추게 한
그 사람의 이름을
너는 알고 있느냐?
말해다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직도 자신의 시원(始原)에 무릎까지 담근 채
암흑의 물을 뚝뚝 흘리며
혼돈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던 사람.
무희여, 그는
저녁이 매만지다 한밤중에다 내던져버린 사람.
진흙더미 속에 버려진 진흙 덩어리.
말해다오, 네가 그 이름을 듣고는 잊어버린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밤이 그의 얼굴을 지워버린 뒤
우리의 형제라고 말하기 전에.
진흙더미가 진흙 덩어리를 부둥켜안고는
내 살이요 내 뼈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모두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들.
새벽이 오기 전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또 내가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돌려버린다면
모든 진흙은 빚어지기도 전에 굳고
굳기도 전에 이지러지고야 말리.
말해다오, 모든 견고한 것들이 부서져
먼지가 되기 전에.
무희여, 지난 춘분제 때 네가
등잔에 불붙여 그의 심장을 신방(新房)처럼 밝혀주었던,
또 그가 너의 손끝과 발끝에 달린 끈에 매달려
너와 함께 시가지와 들판을 누비며 춤추었던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너는 알고 있느냐?
번데기에서 미래의 나비를 알아보는 이의 서판에
그가 있거늘,
죽은 번데기에서 나비의 비문(碑文)을 읽은 이가 있거늘
아, 지금 누가
불과 재 사이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소리 없이 잠의 휘장을 흔들며 스며드는
검은 연기, 이 연기는
결코 연기로 사라지지 않는
어떤 고통을 중얼거리고 있는가.
아이의 잠자리를 빗속에 두고
혼자 이부자리에 누운 듯한 이 봄.
아무도 모르게 손이 자주 가는 상처
여럿인 몸으로 꽃이 피고 싹이 돋고
잎이 지고 꽃이 저물고…… 무희여, 지난 축일(祝日) 때
점토 인형으로 깨어 춤추었던 그를
지금 어떤 시간이 잠재우고 있는가.
모래로 된 가슴에
눈물로 적셔 가꾼 이끼 둥지 하나
여기 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