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서 - 황수아
끓는점에 도달하자 주전자가 경적을 울린다
어느 쓸쓸한 플랫폼에 서듯
떠나가는 소리와 돌아오는 소리를 동시에 듣는다
한 잔의 끓는 물로 열차는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불을 내려도 한동안 주전자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끓는 점과 식는 점 사이에는
설명될 수 없는 경적소리만 남아있는 것이다
모호한 경적소리가 들려올 때면
레일이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낀다
척추 위로 열차가 달리던 시절, 난 항상
등을 구부리고 다녔다
곧은 뼈를 가진 사람이 갈 수 없는 굽은 도시를 생각하며
친구들은 대부분 뢴트겐 행 열차를 탔다
되돌아온 친구는 바람을 벼려 손목을 그었지만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어찌됐던 우리는
서로에게 비겁자였다
주전자가 식어갈 무렵
환청으로 우회하는 경적소리를 듣는다
천천히 제 온도를 낮추는 젊음, 그 안에서
난 너무 오랫동안 떠날 채비를 했다
김 서린 차창을 닫고
몸 밖으로 막 떠나가는 열차
그런 뒷모습을 더 이상 그리움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