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는 골목에서 - 조연향
스무살 우리 딸 어떤 도깨비와 밀고 당기고 있네
그 녀석 나를 보자 얼굴 붉히며 달아나고
-자꾸 내 볼에 자기 볼 한 번만 대보자고 해서 나
는 싫다고 그러는 중이었어-
망둥이 같은 딸 먼저 집에 들여보낸 뒤
살구꽃 흔들리는 등불 밑에서 한참을 서 있었네
그래 물색없이 살다 가려면
저 꽃! 허공 깊은 오랜 시간에 매달려
저리도 온몸이 핏빛으로 속 아릴 때까지
이 봄을 기다리지는 않았으리
봄에 피어나서 봄을 항거하는 저 아름다운 뿔짓
꽃잎 꽃망울 모두 수상하기만 하네
누구나 한 번쯤은 혁명 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인지
한 철을 건너 한 철 까지 비바람의 빈터에서
외로운 마음이 아프도록 뿔을 부비는
풋사랑의 숨소리들이여 저토록 높고 위태로운 가지 끝에서
호명하는 환한 이름들이여
길목은 하얗게 어지럽게 깊어만 가고, 오늘밤 이 세상은
하늘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꽃 속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