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와 손이 있는 정물 - 이원
집 속에 마우스와 내가 있다
마우스는 책상 위에 있고
책상 앞의 의자에는 적막이 배꼽까지 차오른 내 몸이 있다
(적막은 내 두 다리에 조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의심을 모르는 마우스는 긴 꼬리를 달고 있다
역시 의심을 모르는 꼬리는 마우스를 두고
책상을 가로질러 허공으로 사라진다
(거기 어둠이 있다)
마우스는 피카소가 그린 여자의 얼굴 속에 가라앉아 있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여자의 한쪽 눈과 콧구멍 하나는
얼굴 밖으로 나가 있다
그러나 그곳도 얼굴이다
여자의 입은 오른손 가까이로 당겨져 있다
(그 얼굴에는 오른쪽 한쪽이 없다)
나는 마우스 위에 오른손을 얹고 있다
내 몸의 일부는 적막에 묻혀 있고
내 몸의 일부는 바람에 붙어 있고
내 몸의 일부는 지워졌고
내 몸의 일부는 그가 떼어갔고
내 몸의 일부는 꺼진 모니터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마우스가 여자의 얼굴 속에 들어가 있어도
여자의 한쪽 눈과 콧구멍 하나는 얼굴 밖의 세계를 벌름거리고
내가 마우스 위에 온전한 손을 얹고 있어도
여자와 마우스는 따뜻해지지 않고
그러나 마우스는 피카소의 여자 속에
나는 마우스의 등 위에 손을 얹고 있다
(김종삼의 묵화처럼, 소의 잔등처럼, 지금은 저물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