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몰라 행성 - 함기석
큰아이가 몰래
달의 분화구에 노란 수면제를 탔나 보다
달빛 마신 꽃밭도
강아지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뒤척이는 제라늄 눈을 바라보며 자장가를 부르다
나도 약에 취해 잠든다
내가 잠든 사이 작은아이가 몰래
우주 저편 알파켄타우루스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었나 보다
어두운 공중으로 반짝반짝 트럭이 달려오고
외계인 인부 둘이 나를 옮겨 싣고
뒷자리에 앉아 홍주를 마신다
나는 부피 제로 무게 제로
길이가 8만 광년인 바나나 대장경 꿈을 꾸고 있다
트럭이 멈춘다
길게 기지개를 켜며 나는 눈을 뜬다
꽃밭도 집도 강아지도 보이지 않고 사방은 캄캄하다
여기가 어디요?
몰라몰라!
만취해 코가 빨개진 외계인 인부가
시간을 녹여 발효시킨 이상한 술을 권하며
머나먼 지구를 가리킨다
코딱지만 한 옥상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아빠 안녕!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