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 박선경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당신과 나 사이를 일렁이지
여덟 개의 서랍을 차례대로 연 바람의 모양
성난 커튼을 사이에 둔 것처럼
우리는 천둥소리를 삼킨 늑대가 되거나
검은 머리의 독사처럼 정지해 있는
커튼 뒤, 두 주먹을 치켜세운 마주한 세상
당신과 나는 결투의 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 무엇으로든 물들어야하는
스크린 위로 번지는 그림자들의 몽상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리던 두 주먹을 펴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떼들
우리의 창을 열고 어둠과 어둠을 포개어
사랑에 빠진 자신을 바라볼 수 없도록 물들어야하네
창안의 나는 당신이 꿈꾸는 그림자처럼
창밖의 당신은 내가 꾼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는 커튼 뒤에서
당신과 나를 꿈꾸고 있는 누군가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일렁이는 당신과 나 사이
바람의 그림자 배꼽 밑의 서랍을 열어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