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 박수현
젊은 사내가 새 도장을 주문한다
벼락맞은 대추나무의 불행에다
자신의 행운을 기대어
촘촘히 添字한다 이름 석자를 새긴다
자충수만 두다 놓쳐버린 바둑 한 판 같은 삶도
삼재를 물리치고 재운을 부른다는
흑갈색 벽조목 도장
몇 만 볼트 섬광 한 줄기에 되무를 수 있을까
몇 년 째 깨진 도장을 들고 다니다
인장집에 들른 나도
누가 내 삶에다
불행한 발자국을 꾹꾹 찍는가 생각해 본다
-호오
도장집 노인은 입김으로 나무 비듬을 턴다
-이제 찍어봐요, 젊은이
하얀 종이에 한 평생을 꾹 찍는다
대추알처럼 붉은 생의 증거들이 푸시시 웃는다
그는 이제 설흔 한 번 째 이력서를 쥐고
또 다른 전철을 갈아타야 할지도 모른다
젊은이가 나가자 노인은
다시 내게도
좁은 진열대 안에서 흑갈색 도장 하나를 내민다
* 벽조목: 벼락맞은 대추나무,
모든 횡액과 병마를 물리친다는 속설이 있어 도장의 재료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