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묵시록 - 김신영
―혹부리여인이 되어
불혹을 가지 끝에 달아 놓고
오래도록 흔들린다
흔들리다 잠이 들면
꿈결에도 흔들리는 벼랑에
내가 부둥켜안았던
사회들이 불의 혹처럼 즐비하다
연어알, 날치알, 투구게의 알, 그리고 떼꾼한 너의 알까지
해변에서 통통한 알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강가 나루터에서 빙어, 피라미, 각시붕어, 꺽지,
가시납지리를 끓이느라 너를 알아보지 못했고
개굴창에 이름없는 풀이 되어 몹시 흔들리다
이리저리 밟혀 나뒹굴었다
그리고 가끔 산 위의 구름들은 무지개 빛을 실어와
나의 양풍이 될 때가 있었고
길 위의 집들은 홍등을 안고 춤을 추었지
또 가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단편을 읽어 내려가다
끓어 넘치는 술병들과 아침나절 앉아 있었고
버섯들이 자라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걸 보았지
마당 깊은 집에 가는 일은
금세기 내내 화석이 되어
너의 꼬리표에 가끔씩 드러날 뿐이었다.
너무 자란 바오밥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다면서
불혹은 내 삶을 통째로 흔들어 대었지
어디쯤 왔는지
혹을 떼어버린 불혹이 있을 따름인지
여러 개의 혹들이 다시 불독처럼 붙어 불혹인지
혹들이 저마다 말을 하고 나는
혹을 떼어내려다 혹을 붙인 혹부리여인이 되어
오오 나의 불혹을 가지 끝에 달아 놓고
잣나무 가지가지 구석구석까지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