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강이 깊어지면 - 이승하
바람 다시 실성해버려
땅으로 내리던 눈 하늘로 치솟는다
엊그제 살얼음 덮였던 강
오늘은 더 얼었을까 얼마만큼
더 두터워졌을까
깊이 모를 저 강의 가슴앓이를
낸들 알 수 있으랴
눈 … 눈 닿는 어디까지나
눈이 흩날려 세상은 자취도 없다
길도 길 아닌 것도 없는 천지간에
인도교도 가교도 없는 막막함 속
이 반자받은 눈발을 뚫고서
누추한 마음으로 매나니로
강 저쪽 가물가물한 기슭까지
오늘 안으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질기만 한 시간
저녁 끼니때는 왜 이렇게 빨리 오며
밤은 또 왜 이렇게 빨리 오는 것인가
강은 그저 팔 벌려 온종일
받아들이고만 있다 쌓이는 눈을
눈물을, 사랑과 미움의 온갖 때를
강 저쪽 기슭에는
살 비비며 만든 식솔들
사랑과 미움으로 만나는 식솔들이 있기에
가야 하는 것이다 날 새기 전에
참 많은 죽음을 저 강은
지켜보았으리 다 받아들였으리
눈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 홀로 깊어지는 강
침묵으로 허락했던 시간이 쌓여
기나긴 저 강 이루었을 터이니
모든 삶은 모든 죽음보다
어렵다 아니,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