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 노향림
가을이 깊다.
도란도란 속삭이며
뜨거운 몸을 알맞게 식혀서
땅 위에 식물들을 널어놓는다.
마음껏 열정들을
내다 말리고 있다.
마을의 처마 낮은 굴뚝마다
연기 사라진 지 오래 되고
길가 빈 짐수레에도
깊은 가을이 텅텅 비어 실려 있다.
푸른 날들이 금세
몸 가벼이 비어서
쌓여 있다.
아, 화덕에서 아낌없이 타는
번성했던 시간들을
뒤집는 여인들의
손끝이 바쁘다.
머지않아
남자들은 꿈의 밭고랑마다
깊은 씨앗들을 묻으러
떠날 것이고
그 뒤에 남겨진 아낙들은
잘 여문 풀씨만한 영혼들을
펼쳐 널리라.
가을을 끝없이 채젓고 널면서
또 설레임의 날것인
시간들을
익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