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늘을 읽다 - 박정원
누군가 왔다 간다
바람이다
슬쩍 건드려보기도 하고 세게 치고 달아나기도 한다
숨이 잦아들자 강물은
하늘 자리엔 하늘을 구름 자리엔 구름을 산 자리엔 산을
어김없이 품는다
다시 바람이 꽃잎으로 조로록 내려앉자
거꾸로 앉힌 그들 자리에서는
안팎으로 드나들던 독수리날갯짓이, 새끼염소 울음이, 푸른 멍을 입히던 물푸레나무이파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로 팔랑인다
신발 두 짝만 보듬은 사내의 젖은 눈이 아롱자롱 강물 위를 걷는데
수면을 박차고 치솟는 물고기 한 마리
덥석 그 눈빛을 물고 따라간다
갔던 바람도 돌아와 촤르르 빗질을 한다
강을 건넌 사내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빗살문자를 해독한다
하늘이, 구름이, 산이
흐트러짐 없이 그 광경을 베끼고 있다
수심愁心이 깊은 자리마다 빛을 낸다
저리 빛나는 줄도 모르고 강물은 가끔 빗살로 흐느낀다
굴절의 그늘이 더욱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