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여자 - 장승리
- 물결의 안팎
역삼동을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것이 맞나요
그렇다는 대답을 서너 차례 듣고서도
또다시 묻는 여자
역삼동을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것이 맞나요
검은 뒤통수들이 뱉어 놓은 가래침이
여자 얼굴 위로 흥건하다
물결이 될 수 없어 아픈 여자
바람 한 다발 꺾어 그 품에 안겨 주고 싶은데
출렁이고 싶어
칼 한 자루 손에 쥐고
이리저리 제 몸을 헤집어도
붉은 빗방울 하나
제 목을 적시지 못하는 여자
고여 있는 제 몸 더러운 물도
양 손으로 떠올려 놓고 보면
투명한 것을
더러운 투명함만 헤아리고 또 헤아리다
결국 제 가슴에 강물을 포개 놓고
바느질을 시작하는 여자
안 땀, 겉 땀
흰 이빨 훤히 드러내며
강물 위로 번지는 백치의 웃음이
내 입술을 억지로 잡아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