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나 이미 오래 전에 남의 아버지 되어버린 사람이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어린아이 되고 싶은 때 있다
세상에서 바람맞고 혼자가 되어 쓸쓸할 때
그늘 넓은 나무는 젊은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손길을 뻗쳐 나를 감싸주시고
푸르른 산은 이마 조아려 나를 내려다보며
젊은 아버지처럼 빙그레 웃음 지어 보이신다
짜아식 별걸 다 갖고 그러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된다니까
나 머잖아 할아버지 될 입장이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철부지 손자이거나 아예 어린아이 되고 싶은 때 있다
흘러가는 흰 구름은 잠시 머리 위에 멈춰 서서
보일 듯 말 듯 외할머니 둥그스름한 얼굴 모습도 만들어주고
할머니 작달막한 뒷모습도 보여주지 않는가
오빠야 오빠야 때로는 이름 모를 조그만 풀꽃들 발뒤꿈치를 따라오며
단발머리 어린 누이들처럼 쫑알쫑알 소리 없는 소리들을
가을 들길에 풀어놓지 않는가
나 세상한테 괄시받고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때
제 풀에 삐쳐서 쪼끔은 쓸쓸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