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생(生)에 대한 고찰 - 이기와
잡념같은 별들이 수북히 내려앉은 밤 골목
주소 잃은 사내 하나가 오착(誤着)된 우편물처럼
남의 집 대문 앞에 떨어져 있다
풀어헤쳐진 넥타이
헐렁해진 사내의 몸을 벗어 던지고
사색의 문턱에 홀가분히 나앉은 구두 한 짝
사내의 입에선 채 곯아떨어지지 않은 독백이
타액에 섞여 흘러나오고
양복바지처럼 구겨진 그의 그림자가 몇 차례나
제 주인을 일으켜 세우려다 도로 주저앉고 만다
얼마나 고단한 삶을 이고 다녀야지만 저리 한순간
가차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을까?
한사코 직립을 고집해 오던 생의 척추를
깔판도 없는 맨땅에 사정없이 주저앉히고
초인종 없는 아득한 꿈의 저택으로 귀가하기까지
얼마나 자주 환멸의 뒷골목을 순례하며
단단한 정신을 분질러 왔을까
그후 몇차례나 더 잠꼬대의 들을 게워내기 위해
거리의 냉담한 쓰레기더미와 마주했을까
감춰진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까지
편집없는 적나라한 삶을 생방송하기까지
제 영혼을 망각의 대문 앞에 샘플로 내다걸고
얼마나 자주 관객들을 불러모아 왔을까
내가 고탄력 이성의 스타킹을 배꼽까지 두르고
금속 브래지어로 가슴 두 쪽을 바짝 동여매고
하루하루 철저하게 방어하는 내 집 앞 홈그라운드에
오늘은 강력한 라이벌이 먼저와 몸을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