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토록 아름다운 봄날이 - 김병손
언제부터일까
고층 아파트 놀이터엔 저 혼자
피었다 지는 꽃들과 한 번도 움직여 보지 못하고
녹슬어 가는 놀이기구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여 있는 중세의 글자들처럼 무거워지고 있다
낮고 허름한 지붕들이 올몰졸목 모여 사는
성정동 작은 공원엔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균형을 잃어 가는
그네 위에 사시랑이가 슬쩍 앉는다
늦은 시간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형 할인매장 시식 코너에서
고픈 배를 달래던 아이들을 그네는
바람이 바다를 스치듯 가볍게 안아
따사로운 햇살들이 옹골차게 모여
활짝 피운 살구꽃도 보여 주고
만 번의 날갯짓으로 맑은 소리
하늘에 풀어 놓는 새들도 보여 주고
닫혀 있던 따뜻한 시간들이 꽃나무부터
차곡차곡 채워지는 날이면
소공원에서 차가운 상처가 어린 상처를 안고
한결 깊어진 한 덩어리의 봄빛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