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 법고(雪中 法鼓) - 김석
눈이 내렸다
속옷까지 컬러풀이어야 하는
철없는 늙은 사내 가슴뼈 위로
잿빛 옷 비구니가 시린 목숨 두드리면서
내장사 눈발 겨울에 법고를 씻어 치고 있었다
눈 감은 채 하늘 향해 고축(告祝)하는 하얀 사람 소리
목은 잠기고 깊은 울음으로 법고를 두드렸다
눈(雪) 망치로 번뇌 씻어 내는 핏방울 법고 소리
내장(內腸) 진창마다 법고 소리가 하얀 붕대로 감았다
정읍(井邑)을 떠나던 날 아침 눈은 더욱 세찼다
함박눈발 속 호곡하듯 법고를 두드리던 여자
비구니였을까, 극락전 저만큼 홀로 남은 보살이었을까
눈은 하얀 울음처럼 내 검은 혼 터 파고들었다
뒤돌아보는 길 함박눈에 검은 내 옷은 엉망진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