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 - 김석규
이 밤 저 이름없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나를 어데까지 데리고 갈 셈인가.
마당을 채우고 골목마다 가득가득 넘쳐나는
어둠은 목덜미를 꺾어서 덮쳐누르고 있는데
잘 드는 칼로 마구 살점들을 도려내어 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통곡
어떨 때는 칼을 갈라 하고
어떨 때는 칼을 버리라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어둠속
칼을 가진 자도 칼을 빼앗긴 자도 마침내는
풀섶에 누워 호젓이 젖는다.
저녁에 부는 바람과 아침에 피어날 꽃
이 덧없음을 사람들은 믿으려 들지 않는다.
서러운 강물로 흐르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어디까지 가는지를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김석규 시선집 [탐구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