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신발 - 신달자
가을이 그를 데리고 갔다
안간힘으로 겨우 발목을 덮었던
이 세상의 가장 따뜻한 옷깃 한 자락
하필이면 가을은 더는 구할 수 없는
내 심장 한쪽을 가져갔을까
대신 얼음신발 하나 두고 갔다
그것을 신고 앞으로 나 미끄럽게 살겠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리겠네
가을이 사라진 쪽으로 너를 부르지만
이미 소리보다 먼저 내 몸도 앞질러 달아났다
아파서 뒤따르지 못한 가슴 한쪽만
세상이 다 얼음 위라는 조용한 경종을 듣고 있네
어디를 딛어도 세상은 얼음신발 하나네
그러나
그대가 우리의 별이라고 하던 그 별에
내 두 발에 매달린 얼음신발
업보의 쇳덩어리 다 녹을 때는 닿을까
내 발이 함께 얼음이 되더라도
나 기어이 그 별을 걷고 걸어
생의 가설무대를 허물어 그 별에 다시 짓겠다
이마로 박박 얼음 문질러 화끈한 불꽃 활활 켜고
사라진 가을을 헤집어 너를 찾겠다
ㅡ 『시향』2006.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