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책 - 윤의섭
고서점에 가보니 당장 반월로 가라고 한다
과연 몇 몇 무리진 산책자들이 들길을 걸으며
들풀 이름을 맞추기도 하고
꽃나무 아래서 웃음 지으며 향기를 맡기도 하고
날이 이슥해져 공동묘지 사이를 지나가는
한 사람의 등엔 배고픈 아이가 업혀 있다
저수지 가에 늘어선 영양탕 민물 매운탕 백숙 간판이 보여도
짙어 가는 물안개에 발목을 적시며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난 오리도 좋아하는데 아이가 말했지만
농가의 불빛이 도깨비불빛처럼 떠올랐다
한 사람씩 사라지더니 파릇한 새 떼를 입힌 봉분이 솟아났다
달빛에 퍼득이는 수면은 재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여기 달 귀퉁이는 언제나 접혀 있다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밀처둔 남은 날들이
지금껏 남아 있을 리도 없다
다시 접혀진 페이지를 펼쳐본다
아이 호나 달맞이꽃 길을 걷고 있다
개가 지켜보고 붕어가 머리 내밀고 닭이 뛰고 오리가 난다
이 동화책엔 뼈대만 남았다
"시힘" ,"21세기 전망" 합동 앤솔리지 "세상에 없는 책"[작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