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손, 할머니의 - 신경림
하산 산* 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자못 차다
바람에 못 견디듯 차는 한 마을 앞에 와 서서는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고 마을 사람들 두엇이 문간에서 이방인들의 고장난 차를
구경하고 섰다
마을 뒤로는 바위언덕이고 그 뒤로는 기괴한 형상의 바위 무리들이다
차를 고치자면 시간이 걸린다 한다 우리 중 몇이 행선지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풀 한 포기 없는 황지가 끝없이 뻗어 있고 그 뒤로 마을이 드문드문하다
뒤로는 붉은 바위 무리들이고 또 뒤로는 하얀 설산이다
아주 멀리 높다란 첨탑의 모스크를 둘러싼 큰 마을이 보이기도 한다
고속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설산에서 불어오는 모진 바람에 연신 모래를 얹는다
일 킬로 …… 삼 킬로…… 육 킬로…… 한 시간…… 한시간 반…… 차는 따라올 생각이 없다
춥고 지쳤는데 바람을 피할 가게 하나가 없다
문득 길가에 작은 주유소가 보인다 시설이 없는 간이 주유소다
늙은이가 혼자서 오토바이에 손작업으로 기름을 넣고 있다
주유소에 딸린 살림방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주전자를 들고 통하지 않는 말 대신 손짓으로 우리를 부른다
잔에 가득 찬물을 따라 권한다.
ㅡ『문학동네』 2007.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