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의 득음
-득음의 경지는 동굴이나 폭포수 옆에서 목청을 틔운 음보다
한의 경지에서 나온 음이 최고다
정임옥
내 집 앞마당의 감나무를 키운 건
고통의 한 정점으로 타들어가던 청산가리의 유혹
마른번개가 성호를 긋는
천둥이 어둠을 피해간 아침,
감꽃은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한때는 잎이었다가
한때는 꽃이었다가
추운 겨울날 맨몸으로 서 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지
꽃망울 맺힌 자리에 바람이 한 차례 몸을 비벼대자
나무는 밭은기침을 몰아내고 잠잠해졌다
눈 내리는 겨울 밤
흙 속에 청산가리를 들이붓는다
화기로 얼얼해진 부리마다
혹처럼 부풀어 오르는 나무의 전생,
그 위로 초승달이 뜬다
모진 바람에 살 다 파먹힌 저 통점 많은 감나무도
청산가리의 위력이 부럽기만 했다
잔부리까지 짓눌리고 나면
나무라고 그깟 명창이 되지 말란 법 있냐고
대들고도 싶엇다
숨 쉴 수도 없는 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이듬해 봄
감나무는 밤새 성을 냈다
감꽃 목걸이가 고열에 시달릴 때마다
나무 밑둥이 뽑혔지만
이제는 한이 뿌리를 내린다
세상을 향해 두 귀를 열어둔 채
나무는 숲이 보고 싶어 담장 밖을 기웃거린다
나무 뒤척이는 소리에
감꽃이
툭!
떨어진다
정임옥 시집"꽃에 덴 자국"[문학사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