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 이제하
어릴 때는 저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 이파리들이 던지는 풍성한 그늘이 마치 당연한 허구인 듯이,
마시고 그냥 노래했을 뿐이다.
서른 살에 저 나무는 반쯤 편 우산 같은 무리를 쓰고,
하늘 한켠에 외로운 모습으로 직립해 있었다.
돈을 생각하고 걷는 갈짓자의 어지러운 발걸음 저편에
그것은 아득하고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그저 그런 형상처럼만 보였다.
내리막길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서서, 이제서야 문득 깨닫는다
나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 연(聯)해 있는다.
진심으로 내가 소원하는 것은 숲의 무성함이거나 현란한 그 색체가 아니라
깊고도 질긴 그 뿌리였다.
길은 어둡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가장 확실한 모습으로 떨고 선 저 한 그루 나무
이제하 시집 " 빈 들판" [나무생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