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 전순영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 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 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제 또 초록 뽕나무 한 그루
내 앞에 설 것이다
나는 한 잎씩 깨물어 삼키고
한 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고 매일 매일
그 똥의 색깔은 다르다
열두 가지에 매달린 삼백 예순다섯 이파리 퇴비되어
내게로 되돌아올 때
꺼풀을 벗은 누에가 번데기 되듯 그 바깥 둘레에 나를
싸주는 집, 명주실 얼굴은? 몇 개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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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날을 오늘이라고 하지요. 매시 매초 불사르며 우리는 오늘을 살아버립니다. 오늘을 살면 똥이 차오르고 그 똥은 퇴비가 됩니다. 어제 어떻게 살았는가가 오늘의 퇴비가 됩니다. 열두 달, 삼백 육십오일 그렇게 매시 매초,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누에가 씹어대는 뽕잎이 사라지는 것은 찰나가 아닙니다. 서서히, 우리가 매시 매초를 살아버리듯 시나브로 뽕잎은 사라집니다.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우리는 살아야합니다. 살아지는 것도 되고, 살고 싶은 것도 됩니다. 3초 후 죽음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3초를 살아야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은 시간이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살다가 삼백 예순 날을 살고 뽕잎이 다섯 잎이 남은 날에 서있습니다. 또다시 열두 가지에 삼백 예순 이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쳇바퀴 돌 듯 출근하고 똑같은 일을 하며 다시 퇴근하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어제와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만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명주실 얼굴을 찾는 것이 삶 맛 아닐까요?
누에는 말없이 살며 시끄럽지도 않습니다. 아는 척, 있는 척도 안 합니다. 권력에 침 흘리지도, 돈에 침 흘리지도 않습니다. 한 잎 또 한 잎 뽕잎을 갉아먹고 그 산실로 명주를 내어 놓습니다. 한번 떠올려 보세요. 당신은 어제 무엇을 살았는지 내어 놓을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게 일 년을 다 살고 5일이 남은 날 360일을 살아낸 그 무엇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모든 똥이 퇴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퇴비가 될 만한 똥을 싸는 것이 참살이 아닐까요? 매시 매초, 하루하루, 매년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다음 시 다음 초, 내일, 내년을 살아낼 퇴비를 솎아내고 정제하는 일. 그것이 詩作입니다.
2009.10.28 06:34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