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 권순자
어머니가 벗어놓은 고무장갑, 붉은 손가락에 진물
이 난다 청춘처럼 빛나던 붉은 손끝이 뜨거운 냄비에
데고 뜨거운 물에 늘어지고 삭아 너덜거리는 것이 어
머니의 손을 닮았다 굳은 살 잠시 풀어 숨 쉬게 해 준
손, 상한 손을 감싸 대신 늙어간 손, 이제 혼자 부엌에
서 흔들거린다. 부엌데기 설움에 사무쳐 마른자리 기
웃거리기도 하던, 수도 없이 더러움을 긁어 내치던
손, 음식냄새, 쓰레기 냄새 흠뻑 절어서 김치 버무려
더 붉게 물든 어머니의 손, 늘 젖어 힘든 시간 버티며
뜨겁게 살아와 시간에 스러져 가는 손, 얼얼하게 물들
어 이제 꽃대가 된 어머니의 손, 나를 품어 길러온, 세
상 어떤 손보다 큰 손, 성스러운 손이 오늘은 해거름
에 젖어 단풍잎같이 가냘프다.
웹 월간 詩 젊은 시인들2 "풍경 속으로 달린다"[시와사상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