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김명인
길이 제 길을 접고 한 곳에 들기까지는
수많은 네거리를 거쳐 가야 한다
상가와 고층 아파트
그린 공원과 주택 단지로 갈라선 봉송 사거리
길이 길로 가로막히는 것은 언제나
신발 대신 날개를 매다는 새 길 탓이지만
멀고 또 가까워 길은 길을 퍼다 버릴 뿐
어떤 바퀴로도 제 길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검은 띠로 영정을 두르고 국화 꽃다발 포개 싣고
멀리 산 쪽을 당겨가고 있는 저 길조차
길을 꺾어 마침내 한 골짜기에 파묻히기까지는
트인 네거리마다 돋아나는 날개 잘라내느라
한참씩 멈칫거리거나 오래 끙끙대야 한다
김명인 시집"파문"[문학과지성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