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에 관하여 - 최정신
지난 늦가을
탯줄을 뭉텅 끊어 들여놓았던
흙이 순산한 늙은호박,
쩌억~ 진홍색 어둠을 여니
육덕 실한 속살에 싸여있던
맑고 비릿한 것들 곰살스럽다
저들은 빛 고운 암흑에서
배꼽자리 단단히 움켜쥐고
생명을 이어줄 보시(普施)를 나누며
어떤 비상을 꿈꾸었을까
이 생 중 가장 성스러운 요람,
온 우주를 덥어주던 양수 속
달짝지근한 젖줄을 빨며 웅크린 애벌레로
떠있던 어머니의 바리 안이었을 것이다
아늑하고 따듯한 머언 꿈결 속
배냇적 쬐끔한 주먹 같은
생명을 잉태한
윤기 흐르는 환생의 씨앗들 야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