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한 열한시 - 류인서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
석가가 거리로 나가 밥을 빌었다는 시간
그 시간 당신도 거리에 있고 끼니를 구걸 중에 있다
당신의 법(法)도 어쩌면 많은 집에서 많은 밥을 얻는 것일지 모른다
당신은 매일 수많은 집에서 수많은 문을 두드리며 이곳에 온다
이곳에는 관가와 상가와 은행가가 있다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는 구걸하기 좋은 시간
거리에는 막무가내 태양의 핏빛을 색주머니에 퍼담는 곳들과
날선 잎손을 내밀어 초록을 구걸하는 나무들
당신은 또다른 문 앞에 서있고
당신의 수상쩍은 주발은 옆구리에 매달려 흔들린다
서쪽으로 놓인 당신 그림자는 나귀를 닮았다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
당신의 머리 위로 남루의 구름 함지를 이고 새들이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