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3. 해체기/양란-개항기 이전
4. 도가
벽이단으로서 도가 사상 이해
조선에서 노장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주자학의 수용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 노장 철학에 대한 학적 관심의 단초는, 정도전의 '심기리'편과 그 글에 대해 구절마다 자세한 주석을 달고 서문을 붙인 권근의 해석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기리'편은 이단을 배척한다는 벽이단의 측면에서 노장 철학에 접근한 글이다. 여기에서 정도전은 유가는 리학이요 불가는 심학이요 도가는 기학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참조하면 조선 도가 철학의 학적 출발점은 기학으로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이 도가의 입장에서 불교의 이론을 비판한 '기난심'에 대한 권근의 주석을 참조하면, 그는 노장에서 말하는 기를 주자학에서 '리기'라고 할 때의 그 '기'의 의미로 파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는 리에 의하여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성, 변화하는 현상적 존재이며 따라서 형이하자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노장 철학의 핵심은 기가 아닌 도이다. 하나를 더 첨가하자면 덕을 거기에 넣을 수 있다. 그래서 "노자"를 "도덕경"이라고 하고, 도가를 도덕가라 부르기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도전과 권근은 도가 철학을 기철학이라고 보았고, 그 기를 주자학적 의미의 길 파악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도가 사상을 새롭게 파악한 것이요, 기존 사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자기식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조선 학자들이 노장 사상에 보인 관심은 도가 철학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먼저 주자학에 대한 이단 사상으로 상정해 놓고서 그것을 비판하는 작업부터 전개해 갔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노장 주석서를 들어본다면, "노자"의 경우 이이의 "순언", 박세당의 "신주도덕경", 서명응의 "도덕지귀", 홍석주의 "정로", 이충익의 "담로" 등을 들 수 있다. "장자"의 경우 박세당의 "남화경주해", 한원진의 "장자변해"가 있다. 박세당의 "남화경주해"가 "장자"의 모든 내용을 주석한 것이라면, 한원진의 "장자변해"는 "장자" 내편만을 분석한 것이다.
노자 이해
이이에 이르면 새로운 각도에서 노자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노자 사상은 불교 사상과 더불어 시종일관 이단으로 여겨졌다는 데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불교의 경우 윤리적인 측면에서 강상윤리를 끊어 버렸다고 하여 철저하게 비판하지만, 노자의 경우에는 불교처럼 강상윤리를 끊어 버렸다고 보지는 않고 차별을 두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구체적인 노자 사상 이해에 접어들어 노자가 비록 이단이기는 하지만 유학의 입장과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무조건 노자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로 나타났다. 이 입장이 더욱 발전하면 노자 사상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후대에 노자를 잘못 이해하거나 노자를 빙자해 자신의 사상을 공고히 한 사람들 때문에 노자가 비판당하게 되었다는 주장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홍석주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보인 노자 사상 이해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
첫째, 노자 이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유학적 입장에서 노자 사상을 이해한 '이유석로'식 이해 방법이다. 이러한 이해는 노자 사상을 무조건 허무주의로 보거나 이단으로만 보아 배척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과 통한다. 이 입장은 간혹 노자는 유학 사상과 정도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수기치인과 애민치국을 말하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노자의 본의는 결코 유학의 수기치인이라는 구조를 벗어난 것이 아닌데 후대에 노자를 해석하고 이해한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왜곡되게 해석하고 이해한 결과 노자 사상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경우 노자 사상을 장자 사상과 차별화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은 박세당, 서명응, 홍석주에게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한 가지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은 유학적 견지에서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입장에도 정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노자 사상을 무조건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또 "노자"가 허무를 말한 책이 아니라 치국의 방법을 담은 책이라 하여 노자 사상의 긍정적인 면을 밝힌 학자는 송대의 주희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유학적 견지에서 노자 사상을 이해하려는 입장을 제일 먼저 밝힌 사람은 주희라고 할 수 있다. 주희가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기본 입장 가운데 하나는, 노자는 권모술수를 말하고 있으며 명가나 법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홍석주는 주희의 이런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전혀 다른 입장에서 노자를 이해한다. 홍석주는 노자는 명가나 병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았다. 주희와 같은 오해가 생긴 것은 다만 후세에 노자를 잘못 이해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해는 주희의 노자 이해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둘째, 도를 태극 또는 리로 보고, 노자 사상의 도와 관련된 우주생성론적인 측면을 태극과 음양의 관계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노자를 단순히 이단으로 보아 배척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노자가 말한 도가 유학의 도라든지 태극 또는 리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일단 노자의 도가 유학의 도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이의 경우 '순언' 첫머리에서 "노자" 제42장을 해석하면서 도는 태극이고 일과 이는 음양이라는 주희의 말을 인용하여 도를 태극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보인다. 박세당은 "노자" 제39장에 나오는 일을 도로 보고 있다. 박세당의 이런 이해는 "장자"에 대한 이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또 제42장의 "도는 일을 낳는다"는 구절에 보이는 일을 태극으로 보고, 이는 양의로 보고 있다. 홍석주는 직접적으로 도를 태극이라고 말하는 대신 자연이라 하여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노자" 제1장에 대한 해석에서는 노자가 말하는 도가 공자가 말하는 도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즉 노자의 도는 "주역"에서 말하는 이른바 태극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는 "노자" 제4장을 해석하면서 이곳에서 노자가 말한 것은 "주역"에서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고 한 것이나 주희가 "천지가 있기 이전에 먼저 이 리가 있었다"고 말한 것이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노자 사상의 주요 개념을 태극과 음양의 관계로 이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서명응이다. 서명응은 "노자" 제1장의 해석에서 "도는 태극이며, 명은 음양이다"라고 하면서 "노자" 제1장의 전체 구조를 태국과 음양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셋째, 노자가 말하는 도와 덕, 도와 명, 무위와 무불위, 유와 무 등의 관계를 주자학의 체와 용의 관계로 이해하여, 체용일원적 사고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도는 덕 또는 명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역시 유와 무도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이해 방식이다. 이와 달리 노자가 말하는 도와 명을 실상과 비실상의 관계로 이해하고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진위를 판단한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의 왕필이다. 왕필의 입장에서 보면 "노자" 제1장에서의 '언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도'와 항상된 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름'과 항상된 이름은 별개의 것이다. '언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조작된 상, 즉 명호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비실상에 속하며, 항상된 도는 칭위한 것으로 실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실상과 비실상을 문제삼는 인식론적인 진위의 기반 위에서는 실상이 본질이요 진상이 되고,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조작된 상'에서 오는 비실상은 가상이요 현상이 된다. 이것은 체용론에서 문제삼는 본질과 현상의 의미와는 전연 다른 것이다. 박세당은 바로 이와 같은 왕필의 이해를 부정하였다. 체용 관계로 노자를 이해한 대표적인 사람은 박세당이었다. 박세당은 "노자" 제1장의 해설에서 "도는 체이고, 명은 용이다"라고 하면서, 체는 용을 떠나서 있지 않고 용은 체를 떠나 있지 않다고 하여 체와 용이 둘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여러 곳에서 보인다. 이이도 "노자" 제37장에 나오는 무위와 무불위를 도의 체용 관계로 이해하였다. 즉 도의 본체는 무위이고 묘용은 무불위라는 것이다. 박세당은 "노자" 제42장을 해설하면서 도와 덕의 관계를 나누어 말하면 도와 덕의 구별이 있지만, 합해서 말하면 도와 덕은 하나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유학적 견진에서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조선 시대 노자 이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이이의 "순언"에 부친 홍계희의 발문에서 송익필이 "노자의 본뜻에서 어긋나 구차하게 유학의 도리와 맞추려 한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고 말한 것처럼,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데 아전인수격인 경향을 보이게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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