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후진국에서는 일명 지옥철. 도시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으로 체형은 용과 흡사하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 승차권을 소지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며 지정된 역에서만 정차할 수 있다. 신호등에 걸리지 않는다. 교통순경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정체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승객을 기다려 주지도 않으며 승객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는다. 역은 출퇴근 시간만 되면 전쟁터로 돌변한다. 지하철은 토막난 금속의 빵덩어리다. 배달되자 마자 허기진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옆구리에 달라붙어 발악적으로 뜯어 먹는다. 아침이 파괴되고 하루가 구겨진다. 그러나 지하철은 도시 서민들의 타임머신이다. 꿈 속에서는 언제나 시간의 바다를 건너 눈부신 행복의 미래로 질주한다.
장마비
여름 한 철 우기雨期를 기해 지속적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장마비다. 세월이 젖는다. 사랑이 젖는다. 방황이 젖는다. 꿈이 젖는다. 범람하는 황토빛 강물 위로 떠내려 가는 통곡의 세우러. 얼룩진 엽서가 배달되고 약속에 금이 간다. 기억의 서랍 속에도 곰팡이가 피어난다. 유리창 속에는 도시가 흔들린다. 절망이 깊어진다. 시간이 침잠한다. 온 생애가 젖는다.
수세미
걸레는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을 꾼다.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이 수세미의 씨앗을 눈 뜨게 한다. 수세미는 온 세상을 닦아주고 싶은 소망으로 매달려 있는 초록빛 걸레뭉치다.
구름
때로는 하늘을 떠도는 풍류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보신탕
음식문화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 민족들에게만 볼 수 있는 영양식의 일종으로 인간에게 최후까지 자신을 보시하고 극락왕생하는 개들의 충정을 그리는 마음으로 보약처럼 복용하는 여름철의 음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보신탕을 먹는 동양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하지만 음식은 환경과 체질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동물을 사랑하기에 보신탕을 경멸한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그렇다면 그들은 칠면조를 요리하는 법도 모르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보신탕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좋은 체질을 갖고 있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