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도둑질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부를 나누어주기 이전에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의 수고를 자발적으로 거들어 주는 자선 범죄 행위.
열등의식
자신이 남에게 자랑할 만한 건덕지를 조금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 대문에 생겨나는 우울의 늪지대. 신의 공평성에서 제외된 생활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비하해서 생겨나는 의식의 지하감옥. 그러나 모든 진보는 열등의식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새에 대한 인간의 열등의식이 비행기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민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내다버리는 행위를 점잖게 이르는 말.
광신자
오직 지상에서 자신들만이 신의 유일한 사도라는 착각에 빠져서 모든 인간들을 악마로 규정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굳힌 사람. 그들은 대개 제일 먼저 자신의 가족을 팽개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모순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신만이 전지전능하며 남들이 믿고 있는 신은 무지무능하다고만 단정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종교적 성숙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종교인이다.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고
구원에 대해서보다는 멸망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용서에 대해서 보다 심판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성자들의 행적보다는 죄인들의 행적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배후에는 대체로 욕망에 가득찬 악마가 신의 얼굴을 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기주의적인 신앙심에 부채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완장
자신의 임무를 타인들에게 식별시키기 위해 팔에 착용하는 표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완장을 착용하게 되면 갑자기 자신을 영웅시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을 멸시하려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 서민층일수록 완장에 약하고 특권층일수록 완장에 강하다.
여름
일년 중에서 태양이 가장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구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바다가 빈혈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댄다. 길바닥이 타고 있다. 태양이 쏘아대는 빛의 화살들이 모든 사물들을 살해한다. 수목들이 지친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빨갛게 토마토가 익고 있다. 개들이 혀를 빼 문 채 낮잠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난다. 도시가 비어 있다. 때로는 사나흘씩 비도 내린다. 밤이면 신음 같은 천둥소리가 잠을 설치게 만들고 새도록 은백나무
숲이 흐느끼는 소리도 들린다. 문득 지난 여름의 잔해처럼 떠오르는 사랑의 편린. 보내지 못한 편지마다 곰팡이가 부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