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엑스트라
대본의 등장인물란에 이름 대신 복수 접미사나 숫자로 표기되는 배역.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등장과 퇴장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살타
야구에서 공격자의 타구가 수비자의 손에 걸려 자기 팀의 뛰는 놈과 나는 놈을 모두 척살시켜 버리는 불상사를 말한다. 권투에서는 선수와 심판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는 경우를 말하며 세상살이에서는 사랑과 우정을 한꺼번에 놓쳐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겹치는 불행 뒤에는 언제나 겹치는 행운이 뒤따른다. 만약 불행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고 노력을 배가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 불행이 그만한 크기의 행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관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보트
인신매매
황금에 눈이 뒤집힌 파렴치한들이 몇 푼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악마에게 팔아 넘기는 행위. 또는 인간을 상품화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도모하는 모든 행위. 비천한 인간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저질적 표현.
과대망상증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인식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켜 인식하는 정신 병리학적 증세. 인류는 창세기 때부터 이 병을 앓아 왔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말로 아담과 이브에게 과대망상증을 전염 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그 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심증을 굳힏기에 충분하다.
가짜
가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짜처럼 꾸며 놓은 가짜와 진자처럼 행세하는 가짜다. 꾸며 놓은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보다 행세하는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가 한결 비애감을 짙게 만든다. 전자는 물건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후자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걸레
인간들이 방이나 마루나 세간을 닦을 때 사용하는 헝겊으로 낡아서 못 쓰게 된 천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생활용품의 일종이다. 걸레는 다른 사물들에게 묻어있는 더러움을 닦아주기 위해서 자신의 살갗을 찢는다. 대개의 인간들이 걸레들 더러워 하지만 현자들은 걸레에게서 부처의 마음을 배운다. 육안으로 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오물이 산재해 있지만 심안으로 보면 그 자체로써 더 없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게 된다.
천재
수재를 능가하는 인재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사회를 수용할 수 있으나 사회가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재의 죽음은 자살보다 타살에 가깝다.
새
저 세상에서건 이 세상에서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새가 된다.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제일 먼저 새가 된다. 새가 되어 윤회의 길목에 날개를 접고 앉아 그리운 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같은 그리움을 가진 영혼들끼리 같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된다. 사람들은 엽총을 만들어 도처에서 새의 심장을 겨누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그을음
빛의 죽은 미립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멸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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