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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연습」(시인 서규정) 2009년 7월 20일 |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반송이라는 동네에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중앙동까진 한 시간 반쯤 걸린다. 70대 초반의 대선배님들이 한 자리 끼워 주어 늘 모이는 장소에서 백 원짜리 고스톱을 같이 친다. 한참 재미있게 패가 돌아가고 그것도 하필이면 쓰리고를 들어가려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린다.
야야, 나 죽을랑갑다 어서 좀 들어오니라
어머니다, 그렇잖아도 당뇨와 고혈압 거기다가 신경 계통의 오랜 지병이 있어 흐렸다 개었다 하루를 종잡을 수 없어, 어디 멀리 여행도 못 가고 수시로 체크를 해야 할 형편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전철 속에서 뛰고 버스 속에서도 뛰어 방문을 열자 날도 더운 날 홑이불을 머리까지 푹 덮고 누워 있는 것 아닌가, 모골이 송연해져 으매에! 부르면서 이불을 잡아당겼더니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연습이다 연습!
신경질이 나서 그래 할 장난이 없어 죽는 장난을 다 허요 악을 바락바락 썼더니 왜 그래 니는 예비군 훈련도 받았고 가끔 민방공도 안허냐. 참 답답하다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 해야 할지… 처자식 딸린 식구 하나 없이 팔십다섯 된 노인네 수발을 들며 산다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고 복잡 미묘한 것이다. 효도공양을 멀리 떠나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아침 눈을 뜨기 시작해서 저녁 눈감을 때까지 싸운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쓰레기통 놓는 자리부터 반찬도 없는 냉장고 속까지 일일이 상관치 않는 게 없다. 그러니 어미가 남 보기도 남세스러울 만큼 기가 세면 필경 그 자식이 피를 보는 법이라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네들이 나 들어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릴 몇 번이나 들었다. 한번은 전라도 여자라고 했다 해서 엎치락 뒤치락 싸우던 뚱뚱한 경상도 토박이 할매 배 밑에서 간신히 꺼내온 적도 있었다. 노인네들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경로당에 발 끊은 지 오래다. 시쳇말 왕따가 되어 빈방에서 장경동 목사 부흥회를 듣거나 뽕짝이 나오는 성인가요 채널과 혼자 논다.
심심하면 경로당에 가시지.
응흥! 니가 나를 되게 심심하게 만들지, 내가 60이 넘은 자식에게 이런 말까진 안하려 했다만 니가 진정 슬픔이란 것을 아는 인간인가 모르겄다, 무릇 시를 쓴다는 자가 허구헌 날 술만 뒤집어쓰니 머릿속엔 소주잔 하나밖엔 없는 것 같고, 구두 한 짝 어디다 벗어던지고 어떻게 집은 찾아오는지 쯧쯧!
이렇게 나오면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안 된다. 마치 적을 노려보듯이 전투의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밭! 하고 소릴 지른다.
그것은 고향, 지금 안도현 시인이 교수로 있는 우석대학교 정문을 낀 밭 네 마지기를 옛날 옛날에 어머니가 쌀 열 가만가 받고 팔아버린 그 땅이다. 그대로 놔두었으면 지금쯤 벤츠를 타고 다닐 만큼 큰돈이 되었을 것 아니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지만 야코라도 좀 죽여 볼라치면
흠, 정신이 올바른 놈은 이상과 가치를 위해 굶어죽어도 옳게 굶어죽는다던디 쯧쯧.
저쪽 방에서 끙하고 돌아눕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와 받으니 점쟁이에게 본 올해 신수가 여름 끝물에 복(상복) 입을 것 같다고 하니, 소리 지르고 그만큼 싸웠으면 치매는 건너뛴 것 같으니 앞으로 더 유심히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대체 어디로 가려고 세상에 안하던 죽는 연습까지 하는 것인지, 아이고 어마니, 술을 먹어도 이 땅의 슬픔이란 장비 하나는 나도 알고 있고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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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