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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의 맛」(시인 조용미) 2009년 7월 13일 |
아버지는 추어탕을 좋아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다녀와 마당의 넓적한 다라에 빽빽하게 담겨 꼬리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미끈미끈한 미꾸라지들을 보게 되는 날이면 그 날 저녁은 밥상에 추어탕이 올라왔다. 그 날은 대개 외할머니나 삼촌, 고모가 오는 날과 겹쳤다. 추어탕은 뭔가 특별한 날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직접 끓여 주시는 추어탕을 먹는 일은 우리 가족이 지방의 도시에 살던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였고, 서울로 오게 되면서 추어탕을 밥상에서 만나게 되는 일은 사라졌다. 대신 친구의 집에 가서 무가 떠 있는 맑은 닭국과 밀가루 수제비가 들어간 이상한 서울식 매운탕을 처음 맛보았다.
음식에 대한 기호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맛이 아닌 기억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다, 기억이 먼저고 맛이 다음이다. 맛은 기억을 당해 낼 수 없다.
어릴 때 추어탕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어릴 때는 싫어했던 청국장이며 비지찌개, 그리고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매운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간 부추전 같은 음식을 찾게 되었다. 모두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것들이다.
내 혀와 코와 눈에 각인된 추어탕의 맛은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 되살아난 것 같다. 아버지를 모시고 여기저기 추어탕을 먹으러 다녔지만 제대로 된 경상도식 추어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음식점을 나설 때면 늘 옛 맛을 그리워하는 아쉬운 소리를 입에 담았다.
추어탕 맛에 대한 나의 까다로움은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다. 그때부터 어지간히 이름 있는 추어탕집은 물론 허름한 식당도 추어탕이란 메뉴가 들어 있으면 다 가보게 되었다. 한때는 매콤하고 걸쭉한 맛이 나는 남원식 추어탕을 자주 먹기도 했다. 그러나 맛으로 정평이 나 있는 원주식 추어탕, 남원식 추어탕도 그저 좋은 정도일 뿐 내 입맛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그래서 경상도식 추어탕이 그리울 때면 고향에 들렀다가 추어탕을 먹기 위해 청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 이건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해 주시던 바로 그 맛이야! 기억을 만난 것이다. 내 혀에 각인된 추억이 맛을 통해 확 살아나는 순간, 그때 우리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몸이 많이 아파 밥을 차려먹기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좋은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왠지 함께 먹어 보아야 할 것 같은, 어떤 이와 함께 먹으면 목이 메는, 그러나 들키지 않으려고 헛헛한 숟가락질을 하다 보면 한 그릇을 다 비우게 되는 음식. 이 정도면 추어탕 예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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