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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시인 권현형) 2009년 6월 25일_마흔두번째 |
바닷가 사람들은 일부러 바다를 보지 않는다. 바다와 삶이 둘이 아니라 하나. 들숨 날숨처럼 한 몸통이다. 겨울 아침 여덟시 반, 여행 중인 당신은 우람한 회 센터보다도 주문진 부둣가 바로 앞 허름한 선술집 같은 납작식당에 더 끌릴 것이다. 밥 식기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보글보글 끓는 국 냄비를 식히고 앉아 있다면, 출입문을 빠끔 열어 놓고 바다가 잘 보이는 쪽으로 엉성하게 걸터앉아 수저에 턱을 올려놓고 있다면, 당신은 식당 아주머니께 한 쿠사리 듣게 될 것이다.
“국을 떠먹으려면 앞에 바로 앉아야지요.” “바다 보면서 밥 먹으려고요.” 만약 당신이 아주머니 말씀에 토를 단다면, “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 바다에 대한, 밥에 대한 잠언 한 구를 얻어 듣게 될 것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밥 먹느라고 바다를 보지 않는다. 혹은 밥 먹고 바다를 보느라고 잘 익은 창란젓처럼 막이 두껍고 짜고 깊은 바다를 본다.
금방 출항이라도 할 듯 접시 밖으로 한 발씩 빠져나가 있는 갓김치랑 파김치랑 가자미식혜엔 감히 손을 못 대도 흐물흐물 푹 고아진 곰치국의 이상스레 시원한 맛에 간밤의 취기, 치기가 어느 정도 풀리고 부두 주변을 어슬렁거릴 당신. 야생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익숙하고 세련된 커피향에 이끌려 해변의 테이크 아웃 목조계단을 올라간다면 간혹 뜻밖에도 80년대에 사라진 풍경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뺨이 발그레하고 목이 짧고 통통한 디스키 자키가 마이크 테스팅, 마이크 테스팅, 자신이 아는 유일한 영어인 듯 혀로 계속 마이크를 쳐대는 풍경. 디스크 자키의 할머니와 엄마가 그녀들의 친구들을 잔뜩 데려와 은회색 꼭 끼는 양복을 입고 간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자신의 손자를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풍경. 맥주병 마개를 따느라, 돈까스를 칼로 써느라 경쾌하게 병 부딪는 소리, 접시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악을 잠식하는 떠들썩한 평화를 잠시 만나게 될 것이다. 테이크 아웃에서 외지인인 당신은 그들만의 어떤 낯익고도 독특한 음향적 연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창백한 음악이 아닌 따뜻한 음향.
바다가 있는 창 쪽으로는 바닷가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들. 아예 안쪽으로 깊이 들앉은 그들. 바다를 살지 않았으므로 바닷가 사람이 아니므로 창 쪽에 붙어 있던 당신은 어쩌면 소란과 음향을 못 견디고 그곳을 빠져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을 피해 테이크 아웃에서 달아날지도 모른다. 당신이 계단을 거의 내려올 때쯤 김광석 타계 몇 주년이라는 디스크 자키의 멘트와 함께 흘러 나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김광석 노래의 서글픔에 갇히지 않고 바다의 심연에 함몰되지 않고 마수와(맛있어)! 마수와(맛있어)!를 연발하는 바닷가 사람들의 씩씩한 바다를 당신은 언젠가 몹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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