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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즐거움
며칠 쉬는 겨울휴가 동안 인제 내린천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습니다. 몇몇 친한 벗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편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상촌 신흠선생은 야언(野言) 이란 글에서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어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휴가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주어지면 누구나 이 세 가지 중의 어느 한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역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마음에 맞는 벗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평상시에 가보고 싶어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 이 세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이었던 적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이보다 더 많은 볼거리 더 많은 즐길거리들이 널려 있으므로 휴가를 보내는 방식도 훨씬 넓고 다양하고 풍부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겨울강가의 작은 집에서 마당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그 위에 소금뿌려 생선이나 조개를 굽고 찬 더덕술 한 잔을 마시며 고개를 꺾다 상현달을 올려다보는 낯선 일박도 즐거운 일로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겨울 하늘 상현달 옆에 떠서 홀로 빛나는 별이 샛별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다툰다든가, 북두칠성이 늘 같은 자리에 떠 있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의견이 안 맞기도 하고, 흉을 보거나 놀리기도 하며,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즐거워하는 일도 있지만 벗들과 만나 보내는 그런 즐거움 또한 여행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여행 가방을 싸며 가방 안에 넣었던 새로 나온 소설은 차 안에서 40여 쪽을 읽다가 접은 채로 있지만 새로 읽기 시작했으니 오래지 않아 다 읽게 되리란 기대로 설렙니다. 소설 속에서 잃어버린 엄마는 찾을까 못 찾을까 궁금해지지만, 그 생각은 머릿속에 넣어두고 친구들과 세상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삶을 새롭게 충전하는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찾는 삶의 의미와 행복도 멀리 있지 않고 나날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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