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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베드로가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 18:21~22)
미워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더 큰 사랑, 더 큰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사랑입니다. 때론 바다보다 넓고 산보다 크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도 바늘구멍 들어갈 틈이 없는 때가 있는 걸 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합니다. 부족하고 부조리하고 유한합니다.
완전하고 결함이 없고 조화로우며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릅니다. 인간은 애당초 부족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잘못도 저지르고 죄도 짓고 실수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며 탄식하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중용(中庸)』에 보면 '誠者는 天之道요, 誠之者는 人之道'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誠)스러운 것은 하늘의 도(道)요, 성(誠)스러워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완전한 것은 하늘의 도요,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곧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울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는 것, 성실한 마음과 자세를 견지하며 사는 것,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런 속에서 올곧은 삶,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느님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직도 얼마나 부족하고 흠이 많으며 하느님 가까이 갈 수 없는가 하는 생각으로 절망하게 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사는 동안 몇 시간이나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와 있으며, 몇 시간이나 바르게 깨어 있습니까. 보다 더 겸손하게 행동할 걸, 조금 더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할 걸, 좀 더 바르게 행할 걸, 좀 더 온유하고 참을성 있게 지낼 걸 하는 후회가 드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도 그러하고 남들도 그러하다면 우리는 정말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나도 남들과 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죄악에 빠질 때가 많기 때문이며 아직도 그 많은 죄와 허물을 벗지 못한 불완전한 인간이 또 다른 불완전한 인간을 단죄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야말로 남에 대한 더 큰 사랑이요, 남에 대한 사랑의 근본적인 태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내가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용서는 더 큰 사랑입니다. 베드로 같은 분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게 일곱 번을 용서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태 복음』에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사랑이란 한계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요 너그럽고 관대해지는 마음입니다.
용서야말로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요, 인간으로서 완전에 가까워지기 위한 어려운 걸음의 첫발을 디디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는 마음에는 꼭 인내를 필요로 하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기도』의 저자 J. 갈로는 「용서」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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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듯 우리도 이웃을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잠시라도 마음에 원한을 품는 일 없이 즉시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입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조건을 붙이거나 제한을 두지 않고 온전히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 …… )
저 자신도 많은 잘못을 저질러 이웃의 용서를 받아야만 했으니 (…… ) 모쪼록 겸허한 마음으로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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