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 수 5,860 추천 수 16 댓글 0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간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입니다. 옛말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이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맑다는 말은 때 묻지 않고 물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때 묻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은 결국 그 주위에 이웃이 모이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부처도 중생 속에 있을 때 진정한 부처라 했습니다. 남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럿 속에 있을 때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아야말로 진정으로 튼튼한 자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모습을 보십시오. 맨 처음 강물은 산골짝 맑은 이슬방울에서 시작합니다. 깨끗한 물들과 만나면서 맑은 마음으로 먼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폭이 넓어지고 물이 불어나면서 깨끗하지 않은 물과도 섞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면서는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더럽혀질 대로 더러워진 물이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 썩은 물들이 섞여 들어오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강의 생명력은 매순간마다 스스로 거듭 새로워지며 먼 곳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데 있습니다. 가면서 맑아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명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정 작용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끝내 먼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비록 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온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뗄 때만큼 맑지는 못하더라도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섞여 흘러가면서도 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우리도 그런 삶의 자세를 바다로 가는 강물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3,166 | 2023.02.04 |
3160 | Love is... | 風磬 | 18,982 | 2006.02.05 |
3159 | 동시상영관에서의 한때 - 황병승 | 윤영환 | 15,831 | 2006.09.02 |
3158 | 136명에서 142명쯤 - 김중혁 | 윤영환 | 19,113 | 2006.09.02 |
3157 | 고통은 과감히 맞서서 해결하라 - 헤르만 헷세 | 風磬 | 11,841 | 2006.11.02 |
3156 | 어느 한 가로수의 독백 - 우종영 | 風磬 | 9,980 | 2006.11.21 |
3155 | 외로운 노인 - A. 슈티코프 | 風磬 | 10,845 | 2006.11.21 |
3154 |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 유안진 | 風磬 | 8,945 | 2006.12.01 |
3153 | 국화(Chrysanthemum) | 호단 | 9,756 | 2006.12.19 |
3152 | 세상을 보게 해주는 창문 | 호단 | 7,700 | 2007.01.09 |
3151 | 석류(Pomegranate) | 호단 | 6,463 | 2007.01.09 |
3150 | 세상에서 가장 슬픈건.. | 風磬 | 10,646 | 2007.01.19 |
3149 | 연암 박지원의 황금에 대한 생각 | 바람의종 | 8,912 | 2007.02.01 |
3148 | 방 안에 서있는 물고기 한 마리- 마그리트 ‘낯설게 하기’ | 바람의종 | 15,996 | 2007.02.08 |
3147 |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 사실은 의사 지망생이었다? | 바람의종 | 11,839 | 2007.02.28 |
3146 | 불을 켜면 사라지는 꿈과 이상, 김수영 「구슬픈 肉體」 | 바람의종 | 11,801 | 2007.03.09 |
3145 | 나그네 | 바람의종 | 8,760 | 2007.03.09 |
3144 | 어머니의 사재기 | 바람의종 | 7,114 | 2007.04.13 |
3143 | 맑고 좋은 생각으로 여는 하루 | 바람의종 | 7,168 | 2007.06.05 |
3142 | 스스로 자기를 아프게 하지 말라 | 바람의종 | 7,080 | 2007.06.07 |
3141 | 행복과 불행은 쌍둥이 형제라고? | 바람의종 | 23,046 | 2007.08.09 |
3140 | ‘옵아트’ 앞에서 인간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 바람의종 | 47,362 | 2007.08.15 |
3139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맹자의 왕도정치를 통해! | 바람의종 | 13,794 | 2007.08.30 |
3138 | 안중근은 의사(義士)인가, 테러리스트인가? | 바람의종 | 15,895 | 2007.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