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스탈린을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 근거한다면 스탈린은 결코 ‘사회주의자’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스탈린 지도부는 국가에 의한 사회의 무력화와 공포 분위기 조성하였다. 러시아의 1937-1938년까지 정치 관련 범죄로 체포, 수감된 인구는 1.344.923명, 그 중에서는 총살된 인구는 681.692명이었다. 대체로 총살되는 이들은 거의 다수의 “구 공산당원” 등 잠재적으로 반체제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었던 자러 잠재적인 적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그 결과 원자화, 순치된 사회로 “사회적 운동” 가능성의 봉쇄했다.
경제적 폭력은 특히 “농민들의 협동화”, 1929년 이후 사실상 농민들의 자율성을 말살시키고, 농촌으로부터 잉여를 수취하여 공업부문에 투자시키기 위한 매우 가혹한 “농업 희생 정책”을 했다. 또한 스탈린 지도부는 “생존 경쟁” 사회의 탄생을 시도했는데, 하류층 출신의 소련 시민에게는 최대의 과제란 “굶어죽지 않기”, “가족 살리기” 정도였다. 정권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생존”의 주된 방법은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소련 국민의 “가시적인 충성심”은 상당부분 내면화된 생존의 전략이었다.
폭력적인 “농촌 말살”을 기반으로 하여, 공업 경제는 1930년대에 기적적인 압축 성장을 이루어 도시 주민에 대한 포섭 정책을 가능케 했다. 그 대가로 실질 임금의 동결 내지 소폭 하락했고, 구조화된 과로 (하루 15시간씩 노동), 매우 높은 산재사망률을 보였다. 그런데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국가의 포섭 정책이 민중의 희생에 대한 일종의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보다는 오히려 스탈린주의는 기본적인 위로부터의 압축 성장 패턴은 비슷하다고 해도, “대중 독재”의 형태에 다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