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밥과 흙수저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 “청년들이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흙밥’ 탈출구는 정규직 취업이다.”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룬 한 시사 주간지에 나온 문구다. 여기에서 ‘흙밥’은 ‘절대적 빈곤’과 그로부터 비롯한 ‘부실한 식사’를 뜻한다.
나는 ‘흙밥’이란 말을 접하며 어린 시절 소꿉장난하며 먹는 시늉하던 ‘흙으로 만든 밥’을 먼저 떠올렸다. 모양만 밥이되 먹을 수 없는 밥을 가리켰던 ‘흙밥’이 실제 밥을 가리키는 말로 재탄생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런데 ‘흙밥’의 재탄생으로 ‘밥’의 사회적 본질은 보다 분명해진 듯하다. ‘형편없는 밥’을 ‘흙밥’이라 표현함으로써, ‘밥’은 연명하기 위해 먹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먹는 것임을 강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흙밥’의 쓰임을 보면 이 말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흙수저’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흙수저’는 ‘금수저’에 대비하여 빈곤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흙밥’을 먹는 사람이 곧 ‘흙수저’인 것이다. ‘흙수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흙수저’의 원뜻을 ‘금으로 만든 수저’에 대비하여 ‘흙으로 만든 수저’라 생각한다. 금과 흙의 대비가 어색하지만 이를 차원을 달리하는 그래서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흙’이 이처럼 빈곤을 나타내는 낱말을 구성하는 데 쓰이는 건 새로운 경향이다. 앞으로 ‘흙밥’이 ‘흙수저’만큼 널리 쓰이고 이런 부류의 낱말들이 더 만들어지면, ‘흙’이란 말에서 ‘형편없는, 볼품없는, 빈약한’ 등의 의미를 먼저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이런 흐름을 나타내듯 최근엔 ‘흙밥’에서 파생된 ‘흙끼니’와 ‘철밥통’에 대비되는 ‘흙밥통’이 쓰이기도 한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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