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제목을 기억하진 못해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란 노랫말은 기억할 것이다. ‘웃다’와 ‘눈물이 나다’를 병치하여 또 다른 차원의 슬픔을 표현한 이 노랫말은 닥친 현실에 초연하려 하지만 그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 준다.
언제부터인가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웃프다’이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웃펐다”나 “이 드라마는 직장인들의 웃픈 현실을 잘 그렸다”와 같이 쓰인다. ‘웃다’의 ‘웃-’과 ‘슬프다’의 ‘-프-’를 조합하여 만든 낱말로, 그 뜻은 ‘웃기면서 슬프다’인데 의미구조상 ‘슬프다’에 방점이 찍힌다.
그런데 ‘웃프다’로 표현하는 ‘웃픈 현실’은 대개 어이없으면서 한심한, 황당하면서 괴로운 현실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냉소적으로 보려 하지만, 이 ‘웃픈’ 현실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임을 느끼기에 ‘웃픈 감정’은 결국 아픔으로 남는다. 그래서 ‘웃픈’ 현실은 ‘비웃음, 쓴웃음, 코웃음이 나오는’ 현실과는 다르다.
모순적인 말을 병치하여 새말을 만드는 것은 세상사를 하나의 감정 혹은 하나의 기준으로만 느끼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들은 말 중에 ‘착하면서 나쁘다’는 뜻의 ‘착쁘다’가 있다. 블로그나 웹툰 등에서 ‘착쁜 사람’ ‘착쁜 생각’ ‘착쁜 놈’ 등으로 쓰인다. ‘웃프다’에서 착안하여 만든 말로 보이는데, 말맛은 ‘웃프다’에 미치지 못하고 사용 빈도도 낮다.
현재 ‘웃프다’는 ‘우리말샘’에 새말로 등록되어 있지만, ‘착쁘다’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웃픈 일과 웃픈 사연을 매일매일 겪고 듣는 사이에 ‘웃프다’가 먼저 우리말 어휘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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