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
지난주 대관령 산자락에 사는 막내 누님이 눈이 하얗게 쌓인 마을 사진을 보내왔다. 산간 지역이라 눈이 오면 불편한 점이 적지 않을 텐데도 우선은 그 소담스러운 모습에 마음을 뺏기고 마는 것이다.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으니, 눈은 고마운 존재였다. 동요 ‘눈’에서도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라고 하였듯이, 눈은 따뜻한 솜이불이자 배고픔을 달래주는 양식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얀 쌀알처럼 생긴 ‘싸라기눈’의 옛말은 아예 ‘쌀눈’(ㅄㆍㄹ눈 또는 ㅄㆍ눈)이었다. 북한어에서는 겨울에 많이 내리는 눈은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복눈’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눈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초겨울에 조금 내린 눈은 ‘풋눈’,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은 ‘자국눈’이다. 이와 달리 한 길이 될 만큼 많이 내린 눈은 ‘길눈’, 또는 한 자나 된다고 하여 ‘잣눈’이라고 한다. 그리고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을 가리켜 ‘숫눈’이라고 한다.
‘숫-’은 깨끗하다는 뜻의 접두사이다. ‘숫백성’이라고 하면 거짓을 모르는 순박한 백성을 뜻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숫눈처럼 깨끗한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어린이의 눈으로 시조를 쓰셨던 시조시인 서벌(徐伐)의 ‘섣달 그믐밤의 눈’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새하얀 가운 입은 하늘의 약사님이 / 아픈 우리나라 건강 빨리 찾으라고 / 조제한 귀한 약봉지 얼른 풀어 내리신다. // 앓는 산, 우는 강물 그런 들판, 그런 마음 / 다 함께 받고 있는 조선백자 빛깔 가루 / 새해가 내일이니까 건강 금세 찾을 거야.”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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