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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문제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상황에서 자막에 ‘정답을 빗겨간’이라고 나왔다. 이 ‘빗겨가다’는 현대국어에 없는 말이다. 옛말에서는 ‘빗기다’라고 하였지만 현대국어에서는 ‘비끼다’이다. 창을 비스듬히 들면 ‘비껴들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면 ‘비껴쓰다’,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면 ‘비껴가다’이다.
그런데 이 ‘비껴가다’와 흔히 혼동하는 말로서 ‘비켜 가다’가 있다. 어떤 대상을 피해서 간다는 뜻으로 ‘진흙탕을 비켜 가다, 세월을 비켜 가다’처럼 흔히 쓰이는데, 아직 한 단어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위 프로그램의 자막에는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중 어느 것을 써야 할까? 출연자가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피해 간다는 것이니 ‘비켜 가다’가 적합한 말이다. 즉 자막을 정확하게 넣는다면 ‘정답을 비켜 간’이라고 해야 한다.
‘비껴가다’는 두 가지 뜻으로 쓴다. 첫째는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 둘째는 ‘어떤 감정, 표정, 모습 따위가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가다’는 뜻이다. 앞의 의미로는 ‘공이 골대를 비껴가다’, 뒤의 경우로는 ‘서운한 빛이 얼굴을 비껴가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와 같이 ‘비켜 가다’와 ‘비껴가다’는 구별되는 말이다. 위 자막의 ‘빗겨간’처럼 엉뚱하게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도 ‘운명을 비껴간, 세월을 비껴간’처럼 ‘비켜 가다’로 쓸 것을 ‘비껴가다’로 쓰는 잘못을 종종 볼 수 있다.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켜 가다’의 경우 띄어 쓰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비켜나다, 비켜서다’처럼 한 단어로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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