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압존법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근로 시간은 하루 9시간 26분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고 한다. 그만큼 직장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자연히 직장 언어 예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며칠 전 한 직장인이 문의를 해 왔다. 평사원이 부장님께 과장님에 대한 말을 전할 때 ‘-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람마다 판단이 달라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은 두 사람 다 상급자이므로 예를 갖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과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는데, 부장님이 언짢아하셨다고 한다.
우리말의 높임법에 ‘압존법’이라는 것이 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 그 사람보다 낮은 윗사람은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아직 안 오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어법은 주로 가족이나 사제 간처럼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적용된다. 직장 같은 공적인 관계에서는 압존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는 부장님 앞이라고 해서 과장님을 존대하지 않는 것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부장님이나 사장님처럼 과장님의 상급자는 물론이고, 회사 외부 사람 앞에서도 자신보다 상급자인 과장님에 대해서는 높여 말하는 게 원칙이다.
사실상 오늘날에는 가정에서도 압존법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조부모 앞에서도 부모를 높여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일반적이다. 표준 언어예절에서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가정에서의 압존법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부모를 가족 외의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낮춰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것은 우리 전통 언어예절에 어긋난다. 따라서 선생님께 부모에 대해 말할 때에는 ‘저희 어머니(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처럼 높임 표현을 쓰도록 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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