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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깨나
한동안 요리 프로가 인기를 끌더니 요새는 인테리어 방송이 눈에 많이 띈다. 페인트칠만으로 새 집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책장을 침대로 개조하는 일도 뚝딱 해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진다.
한 번은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목공일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힘 꽤나 쓰는 두 사람’이란 자막이 나왔다. ‘힘깨나 쓰는’이라고 해야 할 것을 잘못 쓴 것이다.
‘꽤나’와 ‘깨나’는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혼동한다기보다는 ‘깨나’를 몰라서 ‘깨나’를 써야 할 자리에 ‘꽤나’를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꽤나’는 보통을 조금 넘는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 ‘꽤’에 보조사 ‘나’가 합해진 말이다. ‘꽤’는 ‘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다’ ‘어젯밤엔 술을 꽤 마셨다’ ‘학교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처럼 문장 안에서 동사나 형용사, 또는 다른 부사를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꽤나’를 쓰면 ‘꽤’를 쓸 때보다 그 수량이나 정도가 많거나 높음이 강조되는데 살짝 놀라는 뜻이 덧붙기도 한다. 위에 예로 든 표현들을 ‘꽤나 가까운 사이’ ‘술을 꽤나 마셨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로 바꿔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깨나’는 명사 등 체언에 직접 붙는 보조사로, 앞 말에 그것이 상당한 정도라는 의미를 더해 준다. ‘그는 돈깨나 있는 사람이다’ ‘심술깨나 부린다’ ‘그게 나이깨나 든 사람이 할 소리냐?’처럼 쓰는데, 빈정거리거나 가벼운 불만의 뜻이 덧붙여진다.
위의 자막은 ‘힘’이라고 하는 명사에 직접 붙을 뿐 아니라, 힘을 ‘꽤나’ 많이 쓰는 상황을 담담히 나타내기보다는 대단치도 않은 일에 두 사람이나 나서서 끙끙대는 모습을 살짝 비꼬고 있으므로 ‘힘깨나 쓰는 두 사람’으로 해야 맞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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