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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신통하게도 같은 모양의 의자이지만 어디가 상석이고 어디가 말석인지 금세 안다. 문이나 통로에서 먼 쪽. 등을 기댈 수 있는 벽 쪽. 긴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실에서 윗사람은 짧은 길이의 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평지인데도 상석(上席), 윗자리를 귀신같이 안다. 왜 그런가?
우리는 ‘힘’이나 ‘권력’을 ‘위-아래’라는 공간 문제로 이해한다. 힘이 있으면 위를 차지하고 힘이 없으면 아래에 찌그러진다. 이런 감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숱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몸에 새겨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올라서는 시상대는 은메달, 동메달 선수보다 높다. 경복궁 근정전의 왕좌는 계단 위에 놓여 있다. 선생은 교단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굽어보며 가르친다. 지휘자가 오르는 지휘석도 연주자들보다 높다. 현실세계의 물리적 공간 배치는 사회적 권력과 지배력을 실질적으로 표현한다.
말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윗사람, 윗대가리, 상관, 상사’와 ‘아랫사람, 아랫것, 부하’(그러고 보니 ‘하청업체’도 있군). 위아래 구분은 동사에도 반영되어 있다. 명령을 내리고, 말 안 듣는 부하는 찍어 누른다. 아랫사람은 명령을 받들고, 맘에 안 드는 상사는 치받는다. ‘상명하복’은 관료사회의 철칙이다. 사진에서 상석은 맨 앞줄 가운데 자리이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환갑잔치에서 어르신이 자리 잡는 바로 그곳. 쿠데타 성공 기념사진에서 살인마 전두환이 앉았던 그 자리.
‘상석’은 크고 작은 권력관계를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의 그림자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상석이 만드는 위계를 거역하는 힘도 있다. 상석에 앉지도, 중심에 서지도 않는 힘. 상석을 불살라 버리는 힘도 있다. (어딘가엔.)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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