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백일홍?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붉은 빛이 열흘 이상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무색하게 석 달 열흘 동안이나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 있으니 바로 ‘백일홍’이다. 한 번 핀 꽃이 백일이나 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꽃이 거듭 피고 지면서 백일을 간다. 꽃뿐만 아니라 나무 모양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정자 주변이나 산사에 즐겨 심었는데 요즘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눈에 띈다.
지난 주말 공원에서 흰색 꽃이 핀 백일홍나무를 처음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붉을 홍(紅)’자가 쓰인 ‘백일홍’은 ‘붉은’ 꽃이 피기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흰 꽃이라니? 그럼 이 나무는 백일홍이 아닌 걸까? 만약 이게 백일홍나무가 맞다면 그 이름은 ‘백일백’이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전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꽃 색깔은 붉은 빛을 띄나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어 따로 ‘흰 백일홍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흰 백일홍’이라니 ‘둥근 네모’처럼 앞뒤가 안 맞는 이름이다. 아마도 처음엔 붉은 꽃만 피는 줄 알았다가 나중에 흰 꽃이 피는 나무가 발견되자 그런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백일홍나무는 ‘목백일홍’ 또는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목백일홍은 똑같이 ‘백일홍’으로 불리는, 국화를 닮은 한해살이풀과 구분하고자 할 때 쓴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의 발음이 변한 말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추측만 할 뿐 근거는 없다.
백일홍나무의 또 다른 별명은 ‘간지럼나무’이다. 나무줄기를 손으로 문지르면 나뭇가지와 잎, 꽃이 떨리듯 하늘거리는데, 이것이 간지럼 타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 그런지 백일홍 꽃이 한창인 지금, 백일홍나무를 찾아 살살 간질여 보는 건 어떨까?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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